"통역은 신성하다" 그리고 동물의 권리 - 영화 《옥자》



"통역은 신성하다"


봉준호 감독의 최근 영화 《옥자》에서 그냥 넘겨서는 안 될 중요한 농담.


"통역은 신성하다."

"Translations are sacred." (영어 버전)

"La traducción es sagrada." (스페인어 버전)


극중 케이(실제 배우: 스티븐 연)은 주인공 미자와 ALF(동물해방전선) 사이의 통역을 맡는다. 슈퍼 돼지 옥자와 함께 산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미자의 말을 ALF 계획에 동참하겠다는 말로 바꿔 통역을 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미자의 말이 있는 그대로 전달됐다면 우리는 옥자가 고통 받는 모습을 보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 순간의 잘못된 통역으로 인해 (극중에선 의도된 실수지만) 우리는 영화의 절정을 볼 수 있었다.


이후 케이는 본인의 행동을 반성하며 "통역은 신성하다"라는 문구를 자신의 팔에 문신으로 새겨 넣는다.



"내 이름은 구순범이야"


영화 속 ALF와 경찰의 추격전에서 케이가 한강으로 뛰어 내리면서 미자에게 이렇게 외친다.


"내 이름은 구순범이야."


하지만 영어 버전 《옥자》 속 자막전혀 다른 내용이 나온다.


"Mija, try learning English. It opens new doors!"

"미자야, 영어를 배워봐. 그럼 새로운 세상이 열릴 거야."



번역오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른 뜻을 가진 대사다. 이에 대한 논란도 많았는데 봉준호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 장면에서 아무 말 없이) 그냥 점프(한강으로 뛰어드는 씬이었다)하면 허전할 것 같다고 해서 몇 가지 대사를 해 봤다. 그때 나온 게 '내 이름은 구순범이야'였는데 (스티븐 연이) 그게 되게 좋다고 하더라. 원래 ALF가 실명을 안 쓰고 블론드, 실버, 레드, 제이, 케이 이렇게 하지 않나. 왜 구순범인가. 그건 모르겠다. 옥자를 능가하는 촌스러운 이름이길 바랐다. 이게 썰렁한 유머라서 웃기보다는 망연자실해지는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걸 (정석대로) 영어 자막을 넣으려니 번역이 불가능한 거다. 그래서 아예 다른 대사를 쓴 것이다. 존 론슨의 아이디어였는데 저도 괜찮은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나중에 (미자가 뉴욕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영어책을 딱 보지 않나. 스토리적인 연결 지점도 있다." 


일부러 오역한 번역이라고 한다. 이렇게 의도를 가지고 번역을 다르게 한 효과에 대해 미국 한 기사에선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한국어와 영어를 둘 다 할 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영화 《옥자》 속 최고의 농담이 바로 "내 이름은 구순범이야."다.


또 다른 Vulture 기사에서는 이 농담에 대해 

"Moreover, the mistranslation is a clever subversion of the supremacy of English." 

(영화 속 오역은 영어 패권주의를 완전히 뒤엎었다.)

라고도 설명했다.


※ '영어 패권주의'란?

- '영어의 세계 지배'를 의미한다.





이처럼 영화 속에는 다양한 언어가 소통의 수단으로 등장한다.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그리고 더 나아가 돼지들의 언어, 옥자와 미자 사이의 언어 등. 그리고 영화 내내 '통역'은 하나의 유머 코드로 자리잡고 있다.


영화는 단순히 제 1언어-제 2언어 사이의 소통이 아닌 사람과 동물 사이의 소통까지 신성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슈퍼 돼지, 그리고 베지테리안?


옥자를 보면서 평소 느끼지 않던 돼지에 대한 미안함과 연민이 느껴졌다. 그 이유가 왜 일까 고민해 보니 그건 바로 영화 속 돼지는 강아지처럼 사람을 따르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사람과 교감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었다.


슈퍼 돼지 도살장에서 무자비하게 그리고 무감각하게 죽어가는 돼지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의 아기 돼지만이라도 살리려고 창살 사이로 던지는 부모 돼지를 보니 그들도 우리처럼 존중 받아야 할 하나의 생명이라고 느껴졌다.


평소에 무심하게 먹던 돼지를 영화를 통해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니 생기는 의문 하나.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동물의 권리를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리고 곧 내가 평소 갖고 있던 생각이 무지했음을 반성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였던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은 '동물의 권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The question is not, Can they reason? nor, Can they talk? but Can they suffer?

문제는 동물들이 '이성적인가', 혹은 '말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고통 받는가'이다.


어떤 동물은 생명을 존중 받아야 하고, 어떤 동물은 무시해도 되고의 문제가 아니다. 고통 받을 수 있는 모든 생명은 존중 받아야 하는 것이다.


옥자 속 슈퍼돼지는 과연 실현 가능한 걸까? 무섭게도 최근 '그렇다'는 기사를 접했다.


 제목: 유전자 변형 ‘슈퍼 돼지’ 성공…특허 완료

→  기사 보러 바로 가기



끝내며..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바는 뭘까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결국 고기를 먹지 말자는 건가? 동물을 보호하자는 건가?'


물론 우리가 먹는 모든 고기는 영화 속처럼, 아니 그 보다 더 잔인하게 희생당한 동물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사실 마음은 아프지만 그렇다고 안 먹자니 내가 힘들어지는 아이러니에 빠진다. 영화 속 ALF의 일원 실버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는데 나도 내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며 모든 육식을 포기하고 채식주의자가 될 순 없지 않는가?


이에 대해 봉준호 감독은 채식주의를 강요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공장식 시스템, 유전자 조작 등 자본주의 속 동물 소비 형태를 비판하고 고발하고 싶었던 것이다. 영화 속 미란다 회사의 슈퍼 돼지 도축 시스템을 보면 그들에게 돼지 도축은 단순 비즈니스 그 자체다. 우리가 먹을 식량이 부족해서 혹은 소비할 고기량이 없어서가 아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율을 내려고 동물들을 비인간적으로 학살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먹는 고기의 양 × 계속 늘어나는 인구의 수

이를 고려했을 때 필요한 가축의 양 →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즉 '식량난'이 가중될 것이다.


보통 이런 이유로 유전자 변형 식품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있지만, 동시에 자연 생태계 교란 가능성은 없는지, 인체에 무해한지 등을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 봐야 할 필요가 있겠다.





 [참고 기사 주소]

1. '봉테일' 봉준호 감독이 들려준 '옥자'의 숨은 1㎝
 주소: http://www.nocutnews.co.kr/news/4808212

2. You'll Only Catch Okja's Best Joke If You Speak Both English and Korean

 주소: http://io9.gizmodo.com/youll-only-catch-okjas-best-joke-if-you-speak-both-engl-1796554187


3. Did You Catch the Translation Joke in Okja?

 주소: http://www.vulture.com/2017/06/okja-did-you-catch-the-joke-for-korean-americans.html


4. 유전자 변형 ‘슈퍼 돼지’ 성공…특허 완료

 주소: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523463&r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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