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사고의 상관관계





언어를 이해하면 그 나라가 보인다.

 

 

사피어 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지각과 사고가 달라진다. 즉,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이 가설은 우리의 사고를 언어의 하위 개념에 속해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언어가 먼저 존재한 다음 그에 맞춰 인식이 갖춰진다는 그의 주장은 그 타당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그것은 상대방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언어를 배우면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이는 비단 다른 언어권을 두고 하는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 사이에도 개개인이 갖고 있는 화법은 다 다른 것을 감안해 볼 때, 상대의 화법을 터득한다면 그 사람이 원하는 바를 더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화법도 언어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순수 언어 자체와 사고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외국어를 배우다 보면 '어떻게 저런 표현을 사용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놀랄 때가 많다. 문법도 단어도 말하는 방식도 모두 내가 써오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이라고 이해하게 되면, 그제야 그들의 행동을 수긍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나에게는 언어가 먼저 존재하느냐, 사고가 먼저 존재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궁금한 건, 우리가 쓰는 언어가 어떤 식으로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그걸 우리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 지 알아보고 싶어 이번 포스팅을 준비해봤다.

 

 

몇몇 언어별 차이점

 

외국어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 제일 처음으로 하는 게 '우리말과 비교'다. 이 점은 한국어 어법과 비슷하네, 이 점은 이렇게 다르네. 비교를 하며 받아들여야 되는 차이점은 받아들이면서 공부를 하곤 한다.

 

일본어는 우리말과 어순이 같다는 이유로 한국인이 배우기 제일 쉬운 언어라고들 한다. 이처럼 한국어와 비슷한 언어가 있는 반면, 정반대의 언어도 존재한다. 여기서는 각각의 언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자세히 분석하진 않겠다. 하지만 알게 되면 흥미로운, 재미있는 '우리말과는 다른 외국어 문법'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 일본어에는 물음표를 사용하지 않는 반면, 스페인어에서는 문장 앞뒤 두 번 사용한다.

  (일본어에서는 조사 "-카"(-か)를 사용하여 물음의 의미를 대신한다고 한다.)

 

- 중국어에는 시제변화가 없다. 즉, 과거, 현재, 미래형이 구조가 모두 똑같다.

 

- 한국에서는 큰 아빠, 작은 아빠, 큰고모부, 삼촌, 외삼촌 등의 호칭들이 영어에서는 Uncle 하나로 통한다.

 

- 영어에 존재하는 Be동사, 스페인어에서는 Ser와 Estar로 나뉜다.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

 

아래의 두 상황을 보자.

 1. 질문:  UFO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님 없다고 생각해요?

 

 2. 질문:  UFO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첫 번째 상황에서는 '있다'와 '없다'로 구분 지어 하나의 답을 요구하는 이분법적 질문이다. 이 질문을 들었다면 백이면 백, '음, 저는 있을 거 같아요.' 혹은 '없을 것 같아요'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상황을 보면 그 대답은 달라진다. '있다' 혹은 '없다'라고 대답할 수도 있겠고, '모르겠다' 혹은 기타 다른 답이 나올 수도 있겠다. 이분법적 공간 사이에 중간단계가 끼어든 것이다.

 

즉, 어떤 식으로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답이 한정돼 있을 수도 있고 천차만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질문하는 방식이 곧 화자의 생각이 될 수도, 원하고자 하는 답을 듣고자 하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듯 언어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폭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언어와 저축률과의 관계  (El idioma y su relación con el ahorro)

 

Q:  ¿El idioma que hablas influye en tu forma de ahorrar?

A:  Quien habla idiomas que usan el presente para señalar actos en futuro son más ahorrativas.

 

Q:  당신이 쓰는 언어가 당신의 저축 습관에 영향을 끼칠까?

A:  미래비구분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저축을 더 많이 합니다.

 

 

예일대 행동경제학 교수 Keith Chen는 새로운 가설을 발표했다. 미래형 동사가 존재하지 않고 대신 현재형으로 대체해 사용하는 언어권의 사람일 수록 저축을 더 많이 한다는 것이다.

 

미래형 동사가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미래비구분언어(Futureless languages)라고 한다. 예를 들면, 중국어, 룩셈부르크어, 노르웨이어 등이 있다. 이 언어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미래의 가치=현재의 가치]를 동일선상에 두고 보기 때문에,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어느 정도 포기할 것이라고 여겼다. 즉, 미래를 위해 현재 쓰는 것을 줄여 저축을 한다는 가설로 이어졌다.

 

이에 반해, 영어, 한국어, 스페인어 등과 같이 현재와 미래가 구분되어 있는 미래구분언어(Future languages)는 현재는 현재고, 미래는 미래다 즉, [현재>미래]로 보고 있기 때문에 저축을 덜 할 것이다라는 추측을 내렸다.

 

아래의 그래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국가들을 미래구분언어와 미래비구분언어로 나눈 뒤 저축률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이다. 실제로 미래비구분언어(FTR)을 사용하는 국가가 평균 4.75% 더 저축했다.

 

 

[Keith Chen교수의 TED 강연 동영상: Could your language affect your ability to save money?]

 

 

 

남성형과 여성형이 존재하는 형태의 언어권 사람들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에는 명사에 남성형과 여성형이 존재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남성/여성형 관사로 나뉜 단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의 여성 경제참여도가 과거에 비해 12% 감소한 반면, 그렇지 않은 국가는 3% 상승했다고 한다.

 

과거에는 남성 중심적 단어가 사회의 기준이 됐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영어를 예로 들면, Businessman, policeman, salesman 등의 남성형 단어가 남녀 모두 통칭하는 대표 단어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면서 그 보호 일환으로 '중립적인 단어(sex-neutral)'가 생겨나고 있다. 앞서 말한 단어들 대신 Businessperson, police officer, sales agent와 같이 말이다.

 

그리고 2015년 스웨덴 학술원이 개정판 스웨덴어 공식사전에 중립적인 성을 가진 인칭대명사(Hen)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여기서 'Hen'은 남성 혹은 여성도 아닌, 성별을 밝히지 않는 사람,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 등을 가리키는 중립대명사(Hen)다. 스웨덴 친구랑 이 뉴스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취업할 때 성별이 아주 중요한 평가요소 중 하나로 많은 이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한국과는 달리 스웨덴 사회에서는 '성별'은 어떤 사람을 정의하는 데 있어 큰 의미를 갖지 않는 조건이라고 한다. 남녀평등사상이 나라 전반에 상당부분 조성되어 있지만 아직도 멀었다며 더 나은 평등을 위해 단어를 추가하는 등의 의식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는 모습이 역시 선진국은 선진국이다 싶었다.

 

스웨덴의 'Hen'처럼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도 'he'나 'she' 대신 'ze'를 쓰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는 트렌스젠더라 성을 밝히길 원치 않는 사람들을 위한 중립적인 대명사(gender neutral pronouns)인 것이다. 중립명사 ze 같은 경우는 아직 권고일 뿐 강제성은 없지만, 세계 곳곳에서의 이러한 움직임은 언어가 가진 힘, 무엇보다도 사고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에게 '이것은 남자의 일' 혹은 '이것은 여자의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사회의 이러한 중립단어사용 움직임은 여성을 남성과 같은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궁극적인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평등을 위해 작은 하나의 분야에서부터 근본적인 의식 개선을 끊임 없이 하다 보면, 언젠가는 실질적 평등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2017. 2. 26일자 포스팅 《장애인 vs 장애우, 둘 중 옳은 표현은?》에서도 이미 언급했다시피, 언어가 무의식적으로 심는 인식이 곧 편견이 되고, 편견이 곧 인식이 돼버리는 위험성에 대해 인지해야 할 것이다.

 

 

스페인어와 스페인어권 국민성과의 상관관계

 

이건 언어를 공부하며 느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참고로 나는 언어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아래의 내용이 맞는지 틀린 지에 대한 여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언어에 관해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여기며 내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내가 볼 때, 스페인어권 사람들은 자기방어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달리 말하면, 핑계 거리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 빠져나갈 구멍을 항상 만들고 있다고 해야 하나? 능동적이지 않고 수동적인 느낌도 강하다.

 

 예를 들어, 오늘 보기로 했는데 만나기로 한 약속을 까먹은 친구가 "나 깜빡했어."라는 말을 어떻게 표현할까?

 

나의 첫 작문은 다음과 같았다.

Me lo olvidé. 

내가 약속을 잊어버렸어.

 

왜냐하면, 한국말로는 보통 "내가" 약속을 깜빡했어, 라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페인어권 사람들은 아래와 같이 표현한다.

Se me olvidó.

내가 약속을 잊어버리게끔 만들었어.

 

→ 행동의 주체가 '내'가 아니다. 어떤 무언가로 인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잊어버렸다'가 되버리는 것이다. 이는 Se me hace que... (내 생각에는) 이라는 표현에서도 잘 나타난다. 정확하게 '내 의견은 이래'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끔 만들어'라고 표현한다.

 

 

 또 다른 예로, 핸드폰을 떨어뜨렸을 때를 생각해 보자. 우리 방식대로 생각을 해보면 아래처럼 작문을 할 수 있다. 

 Caí el celular.

휴대폰 떨어뜨렸어.

 

보통, '(내가) 휴대폰 떨어뜨렸어.'라고 말하는 게 익숙하다. 하지만, 스페인어권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Se me cayó el celular.

휴대폰이 내게서 떨어졌어.

 

→ 우리는 행동하는 주체를 기준으로 동사를 정하는 데 반해, 스페인어권 사람들은 행동이 되는 주체가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스페인어에는 'se'라는 대명사가 존재해 위와 같은 '수동적' 표현이 더 많은 것 같다. 이러한 느낌의 표현들을 볼 때, 스페인어라는 언어 구조가 실제로 스페인어권 사람들에게 정신적/사고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이 중심 언어인 한국어를 사용하는 나로서는 그들의 언어습관이 수동적으로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생각은?

 

어디선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어떤 나라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동의어 수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고. '사랑'에 관한 동의어가 많은가, 아니면 '전쟁'에 관한 동의어가 많은가 등을 봤을 때 그 나라가 중시하는 가치가 뭔지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뭔가를 중요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단어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언어와 우리의 사고방식 및 가치관은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언어만으로 한 국가의 국민성을 완벽하게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언어를 통해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말이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지듯 언어라는 것도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다.

 

 

 

 

[기사참고]

http://compraraccionesdebolsa.com/quiero-ahorrar-mas-quiero-ser-noruego/

http://www.bbc.com/mundo/ultimas_noticias/2015/04/150330_suecia_pronombre_neutro_sem_w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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