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사람들이 "No"를 피하는 방법

 

스페인 사람들에 비해 중남미 사람들은 예의가 아주 바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정서와 통하는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무엇을 달라고 할 때도, 스페인 사람들은 "Dame una bolsa." (봉투 하나 줘, Give me a bag)라고 단순 2인칭 명령형으로 이야기하지만, 멕시코에서는 "Me das una bolsa, por favor." (Please give me a bag)라고 꼭 Por favor (포르 파보르: 부탁해요)를 끝에 붙여 정중하게 부탁한다.

 

또한, 명령형도 버릇 없다고 여겨, 동사의 명령형을 쓰는 대신 Regalar (선물하다) 동사를 쓰는 것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 ¿Me regalas unas servilletas?

- 냅킨 좀 줄 수 있어? (직역하면, 나한테 냅킨 좀 선물해 줄래?)

 

내 입장에서는 귀여운 표현이다. '이것 좀 줘, 해줘' 대신 '선물해줘'라는 표현은 내겐 너무 따뜻한 느낌을 준다.

 

어쨌든 멕시코 사람들은 "No"라고 말하는 걸 극도로 피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거절하는 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서다. 거절하는 행위가 예의 없음을 뜻하는 건 결코 아니지만, 비단 멕시코 사람들만 갖고 있는 생각은 아닌 듯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거절하는 걸 어려워해, 오죽하면 '거절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출판되고 있지 않은가.

 

멕시코에서 지내면서 그들이 "No"라고 대답하는 걸 피하기 위해 하는 공통된 방법을 몇 개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 방법들을 이번 포스팅에서 공유해본다.

 

Gracias

 

예를 들어, 어떤 멕시칸에게 "이거 먹을래?"라고 물었더니 "고마워"라고 대답한다면?

 

누구라도 동의의 표시로 알아듣고 먹을 걸 건넬 것이다. 그럼 멕시칸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거절을 한다. 그들의 "고마워" 속에는 "(아니야, 괜찮아. 호의는) 고마워"라는 의미가 숨겨있는 것이다.

 

처음 한 동안은 얘가 먹겠다는 건지 안 먹겠다는 건지 몰라서 나 혼자 어버버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황하지 않는다. 그들은 'No'만 안 붙였을 뿐, 거절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Gracias'를 말했던 것이다.

 

- ¿Quieres tomar agua?

- Gracias.

- 물 마실래?

- (아냐) 고맙지만 괜찮아.

 

 

Ahorita

 

Ahora의 축약형, Ahorita. '지금'을 더 작게 쪼갠 의미니, '곧, 지금 바로'와 같은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ahorita가 가진 뜻에 속아서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큰 오산이다.

 

멕시코에서 일하면서 저 Ahorita (아오리따) 때문에 나의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다. 예를 들어 보면 아래와 같다.

 


- Luis, ¿le puedes marcar a ABC compañía para saber cuándo van a llegar los materiales?

- Ahorita lo checo.

- 루이스, ABC회사에 전화에서 물건 언제 도착하는지 알아볼래?

- 지금 바로 체크할게.

 

Pasando unos mitunos, unas horas, unos días... (몇 분, 몇 시간, 며칠이 흐른 뒤)

 

- ¿Qué te dijo de la fecha?

- Ah, te juro que ahorita le marco.

- 도착하는 날짜 언제라고 했어?

- 아, 내가 정말로 다시 체크해 볼게.


 

정확한 마감 기일을 정해주지 않으면, 그리고 중간중간 체크하지 않으면 시킨 일은 무제한 팬딩상태가 돼버리기 일쑤다.

 

"수요일 오후 3시까지 나한테 보고서 제출해."라고 해도 보고서를 받을까 말깐데 말이다. 멕시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시간에 대한 개념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시간관념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멕시칸들의 이러한 성향을 모르고 함께 일하게 된다면 많이 답답해한다. 특히 한국사람은 더더욱.

 

집에 보일러가 고장이나 관리사무소에 수리공을 불렀더니, Ahorita 온다더니 결국 2주 후에 얼굴을 보여 준 일화는 아직도 웃프다. 지금 올 수 있어? 라고 물었을 때, Ahorita voy 라고 대답하며 정확한 답을 회피하는 것이다. 지금 못 오니까 Ahorita 라고 대답한 걸수도..

 

물론 지금은 나도 얘네들처럼 Ahorita를 사용하며, 가끔은 남발해 "너 이제 멕시칸보다 더 한 멕시칸이야"라는 말을 듣긴 하지만. Ahorita의 의미를 알고 싶으면, 멕시칸이랑 약속 한 번만 잡아보면 바로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Sí.

 

멕시코 사람의 "Sí"는 많은 경우 "No"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나부터 정확하게 질문을 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 ¿Ya están listos los folletos que le solisité?

- , ya.

- Okay. Entonces voy para allá para recogerlos.

- 내가 요청한 팜플렛 다 완성됐어?

- 응, 다 끝났어.

- 그래, 그럼 내가 그거 가지러 그리로 갈게.

 

En la tienda,  (가게에서)

 

- ¿Ya están mis folletos?

- Sí.   (pero sin mover)

- ¿Dónde? Traígamelos, por favor.

- Bueno, es que todavía no han llegado, pero ya están imprimidos.

- Entonces, no están listos. ¿Verdad?

- Sí, así es.

- 내 팜플렛 다 됐지?

- 응.   (하지만, 움직임이 없다)

- 어디 있어? 나한테 좀 가져다 줄래.

- 아 그게, 아직 도착 안 했어. 그게 지금 인쇄 중이거든.

- 그럼, 준비 안 된 거지. 그렇지?

- 응, 맞아.   (여기서 sí는 비로소 진짜 sí로 해석하면 된다)


 

Quizá

 

'아마도, 어쩌면'이란 뜻을 가진 형용사다. '아니'라는 거절 대신, '아마' 가능할 거야 라는 불확실한 표현으로 속마음을 내비친다.

 

- ¿Quieres cenar conmigo, el viernes?

- Sí, quizá... Bueno, tengo cosas que ahcer, mmm.. pero bueno. Okay. Quizá ahi estaría. Nos vemos el vier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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