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력의 한계가 내가 아는 세상의 한계

ⓒ  fotografierende, pixabay

 


블로그를 하면 할수록, 외국어를 공부하면 할수록, 내 어휘력의 한계를 처절하게 느끼며 끊임없는 좌절감에 고통받는 중이다. 끊임없는 좌절감을 그나마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역시나 끊임없는 노력이겠지만, 그 간극이 도통 줄어들지 않는다.

영어를 공부하며, 스페인어를 공부하면서 느낀 게 있었다. '아, 새로운 언어를 하나 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보는 세계가 이렇게나 넓어질 수 있구나.' 언어를 통해 그 나라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를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부딪치며 경험하고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외국어 실력이 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내 모국어 실력에 의문이 생겼고, 난 한국어를 왜 이렇게 못할까!! 하며 낙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외국어를 떠나서, 한국어만 놓고 보더라도 '저 사람 말 진짜 잘한다!'라고 감탄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그 이유를 따져보면 어휘력이 큰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같은 영화를 보고 "어땠어?"라는 질문에 나는 고작 "진짜 재밌었어!!! 완전 강추!! 이제 내 최애 영화야!!" 정도가 최상의 표현이다. 반면 상대방은 영화의 한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그 속에서의 음악, 배경화면, 효과 등을 아주 예쁘게 표현하며 그래서 그의 최애 영화가 됐다고 말한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표현하는 게 이렇게나 다르다. 나라고 저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을까!! 말이 떠오르지 않을 뿐..

블로그를 꾸준히 하려는 이유도 앞에서 말한 저 간극을 줄여보고자 함이다. 글을 쓸수록 너무 뻔한 말로 뻔하게 설명하고 뻔하게 표현하는 것 같아서 답답함을 느낀다. 그래서 보다 풍부한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 국어사전을 자주 찾고, 유의어 사전은 더더욱 자주 찾는데도....... 부족하다. 내가 아는 만큼 표현의 범위도 넓어진다. 당장엔 표가 안 나겠지만 오늘도 난 책을 꺼내들어 읽기 시작한다. 이것이 조금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어휘력의 한계가 내가 아는 세상의 한계

연재ㅣ강원국의 ‘공부하면 뭐 하니’ 2007년 10월3일 평양 외곽 백화원초대소에 있었습니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북한...

www.hani.co.kr

 

○ 내가 밑줄친 문장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가장 먼저 온라인 국어사전을 엽니다. 내 머릿속에 생각난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떠오르는 단어를 국어사전에 쳐보고 유의어 중에 더 맞는 단어를 찾아 씁니다. 조지 오웰이 그랬다지요. 딱 맞는 단어와 적당히 맞는 단어는 번갯불과 반딧불 차이라고요. 딱 맞는 단어를 찾았을 때 짜릿한 기쁨을 맛봅니다. 그 순간 내 글이 좋아지고 나의 어휘력이 향상되지요.

 

어휘력은 또한 유의어를 많이 떠올리고, 맞는 단어를 찾아내는 능력입니다. 떠올리지 못하면 찾아내지도 못하죠. 일차적으로 떠올려야 하고 떠올린 단어 중에 맞는 단어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왕이면 여러 단어를 떠올릴수록 좋겠지요. 이런 어휘력을 기르는 데 가장 빠르고 손쉬운 길이 바로 국어사전을 열어놓고 글을 쓰는 것입니다.

 

글을 쓰고 말을 잘하려면 어휘력이 필요합니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어휘로 하는 것이니까요. 부족한 벽돌로는 멋진 집을 지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실 말하기나 글쓰기는 어휘를 계속 떠올리는 과정입니다. 어휘가 빨리, 다채롭게 떠오르면 글을 풍성하게 빨리 쓸 수 있고, 말도 유창하게 할 수 있지요. 딱 맞는 단어를 고를 수 있을 때 비로소 정확하고 명료한 말하기와 글쓰기가 가능해집니다.

 

어휘력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바탕이 되는 사고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어휘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니까요. 담을 그릇이 없는데 무슨 내용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식인은 아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걸 표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언어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가 곧 내가 아는 세상의 한계’라고 했고, 조지 오웰 역시 ‘어떤 말을 하고 싶어도 표현할 단어를 못 찾으면 나중에는 생각 자체를 못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어휘로 표현할 수 있는 것까지가 아는 것이지요. 표현하지 못하면 모르는 것이고요. 그러니 어휘력이 빈약하면 사고력이 빈곤해질 수밖에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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