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서 쓰는 글

 

 

같은 빗소리를 들으면서도 저마다 다른 의성어로 표현한다.

 

주륵주륵, 보슬보슬, 후드득 후드득……

 

 

톡토톡 토토토톡 거리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의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빗소리를 표현하는 스페인어 의성어에는 Splash, plic plac, glu glu, chop chop, chu chu chu, clop clop 등이 있지만 나에겐 잘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의성어를 볼 때마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깨닫는다. 의성어가 주는 현장감을 통해 감정이 더 동요되는 것 같기도 하다.

 

 


번역 AI 관련 기사를 하나 읽었다. 문학작품을 AI가 과연 번역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일부 제시해주고 있다.

 

그 기사 속에서 마주한 하나의 시.  봄비, 망울 하나 낳아놓고.

 

 

 

봄비, 망울 하나 낳아놓고

우영규


밭둑가 덩그런 컨테이너 지붕에

모여 우는,

미간만큼 열린 창틀 사이에

오종종 모여 우는,


치마 끝에 젖어들어

위태로운 여인을 대뜸 꺼내놓으려나

그 겹겹의 속내를

맨 허벅지처럼 꺼내놓으려나


가지 끝에 기어이 망울 하나 낳아놓고

겨우내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던,

왜 우느냐고 물어도 설명하지 못하는,

주름치마 성글게 고쳐 입은

여인의 텅 빈 눈 속으로 젖어들어


뚝뚝, 서럽게

서럽게 우는 봄비여!

 

 

봄비는 소리와 냄새부터 다르다. 소리도 없이 겨우내 숨죽였던 새순들 다치지 않게 보슬보슬 비가 온다. 빗방울이 방울방울 모여 천천히 젖어드는 것까지도 시인은 터득하고 빗방울이 “지붕에 모여 우는” “오종종 모여 우는”이라 했다. 컨테이너박스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우는 소리로, 빗방울이 눈물로 화자의 심상에 반영되었다. 겨우내 가물어서 비 한 방울 오지 않다가 드디어 내리는 봄비를 두고 “겨우내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던”이라 표현했다. 주름치마 성글게 입은 여인은 다른 연상으로도 이어지겠지만 밭고랑의 비유다. 밭은 대지의 모신이라 하지 않는가. 씨 뿌리기 전 텅 빈 밭에 내리는 비를 “텅빈 눈 속으로 젖어들어”그냥 우는 게 아니라 서럽게 운다 했다. ‘오종종’과 ‘뚝뚝’의 의성어와 ‘모여 우는’과 ‘서럽게’를 반복한다. 내면으로 흐르는 묘한 리듬이 있어 봄비 오는 정경이 눈에 선하다.

(기사 내용 일부)

 

 

 [원문 기사]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90322.01039082735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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