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완벽주의자 (Una perfeccionista perezosa)



아주 오랜만에 올리는 글이다. 이번에는 조금 솔직해 보려고 한다. 물론 지금까지 솔직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글이 다분히 사적이다.

 

 

아직 2019년이 다 가지 않았지만, 올해에는 (적어도 현 10월까지는) 블로그에 소홀했다. 글을 몇 개나 썼는지 수치로 확인해보니 더욱 부끄러워졌다.

 

1月- 5개

2月- 4개

3月- 0개

4月- 5개

5月- 2개

6月- 0개

7月- 4개

8月- 0개

9月- 0개
10月- 0개

 ㅡㅡ> 총 20개

 

 

변명 아닌 변명을 해 보자면 나의 성향때문에 글 쓰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다.



게으른 완벽주의자



뇌리에 딱 꽂힌 저 단어. 나였다. 



게으른 완벽주의자(혹은 소극적 완벽주의자)들의 행동 리스트를 보는데 너무나 나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가장 공감을 한 건 3번과 7번. 

 

 1. 평소에 방 청소 잘 안함. 하지만 할 때는 진짜 방을 다 뒤엎고 함.

 2. 지각할 바에는 결석이 낫지.

 

 공감백번한 3번.

 

그렇다. 그래서 그 유명한 미드 왕좌의 게임 보는 것도 포기했다. 그리고 마블 영화도 순서가 있다고 해서 안 보다가 최근에 '큰' 용기내서 어벤져스 앤드게임을 먼저 봐 버렸다.

 

 4. 다이어트 할 때 약속 있으면 아예 시작 못함. 하려면 확실히 해야함. 그래서 다이어트도 몰아서 함.

 5. 새로운 동아리/활동 시작할 때 엄청 고민함. 왜냐하면 한번 들어가면 제대로 해야 하기 때문에.

 6. 공부/자격증 신청하기도 마찬가지 이유로 정말 두려워함. 신청해 놓고, 계획 짜 놓고 제대로 못하면 자괴감이 엄청나기 때문.

 

 공감 또 백번한 7번.

 

 

그렇다. 그래서 공부할 때 메모하다가 한 글자라도 잘못 쓰면 찢고 버린 포스트잇이 아주 많다.

 

 


나의 문제점



블로그에 하나하나 나만의 글을 채워갈 때도 내 마음이 마냥 편했던 건 아니다. 블로그에 대한 원초적인 고민은 항상 갖고 있었다. 그 고민들이 커지고 커져 글을 안 쓰는 지경에까지 오게 되었지만.

 

아래는 내가 갖고 있던, 그리고 지금도 하고 있는 고민들이다.


 

▦ 하나. 스페인어에 대한 생각과 정보를 나누고자 시작했는데, 그 정보들이 중구난방으로 정리가 안 되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어, 《스페인어문법》 메뉴만 보더라도 문법에 대한 설명이 기초부터 중급, 고급까지 차례대로 정리가 되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럼 문법을 이해하고 싶어 내 블로그를 방문한 사람들이 보다 차근차근 공부를 할 수 있을 텐데. 다시 처음부터 문법을 정리해보고 싶다ㅡ라는 마음이 드니 문법에 대한 글이 막혔다.

 

▦ 둘. 《Cuéntame cómo pasó》 연재도 멈추게 된 이유가 재밌게 보던 드라마가 부담으로 느껴졌다.

 포스팅을 할 때 보통 드라마를 한 번 보고, 다시 처음부터 또 드라마를 보면서 표현을 정리한다. 솔직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시간을 단축하고자 드라마를 한 번만 보면서 동시에 표현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반복되니 드라마 보는게 즐겁고 가벼운 일이 아닌 부담스러운 일, 하나의 큰 숙제가 되 버렸다.

 

▦ 셋. 《스페인어노래》와 같이 문화 관련 글은 일주일에 한 번, 이런 식으로 꾸준히 작성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돼서 글 쓰는 걸 멈춰버렸다. 그리고 노래 가사를 번역할 때 예쁘게 번역하고 싶은데 어떤 표현을 써도 내 맘에 안 들어서 답답한 경우가 많아서 포기하기도 했다. 

 

▦ 넷. 완성도 있는 글을 쓰려고 자료를 많이 찾다 보니 글 하나를 쓰는데 시간이 몇 날 며칠이 걸릴 때도 있다. 내 기준에서 글이 너무 짧으면 죄책감 아닌 죄책감이 들어 글 쓰는데 흥미를 잃어버렸다.

 

▦ 다섯. 스페인어 뿐만 아니라 내 개인적인 일상도 공유해보고 싶은데, 그렇게 되면 내 블로그의 주목적인 '정보공유'에서 벗어나 너무 '사'적인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어 자제하게 됐다.

 

▦ 여섯. 블로그의 글들 하나하나가 '기록'으로 남는다. 만약 내가 잘못된 내용을 전달했다면 부끄러울 것 같아서 글 쓰는게 조심스러워졌다. 그리고 그 당시에 확신을 갖고 했던 말(주장)들이 지금은 아닌 게 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적고 보니 고민들이기보다 글을 멈춘 변명들이다.



그래서 해결책은?



 어찌 됐든 글로 쓰다 보니 마음 속 정리가 돼서 내 나름의 해결책을 찾았다.


 

▦ 하나에 대한 답: 내가 무슨 '책'을 내는 것도 아니고, 문법을 기초부터 차례대로 설명할 생각을 하지 말고 어떤 문법이든 '쉽게' 설명할 고민을 하자.

 

▦ 둘에 대한 답: 가능한한 많은 표현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내 마음은 인정. But 굳이 모든 표현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까? 한 챕터당 하나의 표현만 건져도 큰 일 했다고 생각하기.

 

▦ 셋에 대한 답: 번역도 다양하게 해봐야 실력이 는다. 완벽한 표현은 없다. 많은 표현을 시도해보려고 애쓰자.

 

▦ 넷에 대한 답: 매번 글을 짧게 쓰는 것도 아닌데, 길게 써야 글처럼 보인다는 강박을 버리자. 그리고 완성도에 대한 강박도 버리자.

 

▦ 다섯에 대한 답: 사적이면 어떤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과의 소통을 통해 글도 발전할 수 있다.

 

▦ 여섯에 대한 답: 기록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말고 기록에 남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자. 나의 말 하나하나가 주홍글씨가 될 거라는 생각을 버릴 것. 나의 이야기가 모든 사람의 공감과 호응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타인의 비판을 두려워 말고 그것을 건설적인 피드백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언제나 하고 있을 것.

 


 

이 모든 것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면 나만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대로 이것저것 쓰다 보면 블로그의 방향성이 잡히지 않을까? 나만의 색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흠. 이 정도면 방향성이 있는 건가, 블로그의 색이 있는 건가. 내 기준에는 아니지만. 이 정도가? 사실 확신과 믿음이 없다.

 

But 지금부터는 너무 확신과 믿음을 찾지 말 것. 확신과 믿음이 없으면 또 어떤가.


자유롭게, 해보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해 보기. 일단 해 보기!




 

하하핳ㅎㅎㅎㅎㅎㅎㅎㅎ 바로 저 거다. 아무것도 안 하는 주제에 완벽하지 않아서 온갖 짜증이 나는 거다!!!!!

 

한번 해보고 되면 좋고 말면 말지뭐ㅡ가 잘 안된다. 잘 못할것 같으면 도전도 안 한다. 그런데 문제는 도전을 한다고 해도 완벽하게 끝내진 못한다는 거다. 그럴 거면 왜 시작을 안하는 건지. 그냥 완벽주의라는 변명으로 포장한 게으른 인간인 듯. 

 

사실 이 세상에 완벽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뻔한 말이지만 일단 해야 한다. 시작해야 뭐든 할 테니.

 


그런데 여기서 나에게 중요한 것은 "포기할 수도 있다는 거,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

 

포기와 실패에 크게 연연해 하지 말기.

 

누구나 포기를 한다.

 

 


나와의 작은 약속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시작하는 작은 프로젝트. 프로젝트라고 하니 거창하다. 작은 약속정도.

 

올해가 가기 전 딱 하나의 목표는 '하나의 습관' 만들기다.

(아, 사실 이 '목표'라는 거에 그만 얽매이고 싶지만 블로그에 대한 책임감을 위해 정말 딱 하나만!)

 

 

■ Hábito: 매일 스페인어 글 하나 읽고 포스팅하기.

 

 → 여기서 중요한 점!

1. 어떤 글이든 상관없다. 자유 테마.

2. 단어 하나라도 좋다. 표현 하나라도 좋다. 분량 자유.

3. 글을 못 읽었다면 스페인어와 관련된 주제면 아무거나.

4. 혹여나 글을 하루 못 썼다 해도 죄책감 갖지 말고 과감히 다음 날로 미루기.

5. 또 혹시 습관이 안 잡혀도 우울해 하지 않기!

 

 

 

p.s. 어디선가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 여러분들. 올해가 가기 전 이루고자 하는 작은 목표가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그리고 뭐가 되었든 응원합니다! 함께 뭐든 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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